읽을거리 · 디자인
레퍼런스를 모으기만 하고 못 쓰는 이유
북마크 폴더와 핀터레스트 보드가 쌓이는데 정작 작업할 때 못 꺼내 쓰는 문제. 꺼내 쓸 수 있게 모으는 방법을 정리했습니다.
핀터레스트 보드 스물세 개, 북마크 폴더 열두 개, 인스타그램 저장 800개. 그런데 막상 포스터 작업을 시작하면 처음부터 다시 검색합니다.
모으는 행위 자체가 만족스러워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저장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중에 쓸 수 있는 자원"이 생긴 것 같지만, 실제로 그 자원은 꺼낼 수 없는 상태로 쌓입니다. 왜 못 꺼내는지부터 봐야 방법이 나옵니다.
못 꺼내는 세 가지 이유
첫째, 저장할 때의 분류와 꺼낼 때의 분류가 다릅니다. 저장할 땐 "예쁜 포스터"로 넣는데, 꺼낼 땐 "여백 많은 세로형 편집물" 같은 구체적인 조건으로 찾습니다. 넣는 언어와 찾는 언어가 어긋나 있으면 검색이 안 됩니다.
둘째, 왜 저장했는지를 안 적습니다. 6개월 뒤에 그 이미지를 다시 보면 뭐가 좋아서 저장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색이었나, 레이아웃이었나, 폰트였나. 저장한 이유가 사라지면 그건 그냥 예쁜 사진입니다.
셋째, 양이 임계점을 넘습니다. 이미지 50장은 훑어보면 되는데 500장은 훑어볼 수 없습니다. 검색 가능한 구조가 없는 상태에서 양이 늘면 쓸모는 오히려 줄어듭니다.
저장할 때 태그를 하나만 붙입니다
완벽한 분류 체계를 만들려고 하면 실패합니다. 폴더를 스무 개 만들어 놓으면 어디에 넣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저장을 안 하게 됩니다.
대신 왜 저장했는지를 한 단어로 남깁니다. 이미지 하나에 이유 하나. "여백", "그리드", "색조합", "질감", "폰트조합", "카피톤". 나중에 찾을 때 쓰는 말이 바로 이 단어들입니다.
핀터레스트라면 보드 이름을 이 기준으로 바꾸면 됩니다. "포스터", "웹디자인"처럼 매체로 나눈 보드는 커지기만 하고 못 씁니다. "여백이 좋은 것", "색 두 개로 버티는 것"처럼 이유로 나눈 보드는 작업할 때 실제로 열립니다.
사이트는 이미지와 따로 관리합니다
여기서 많이들 섞습니다. 이미지 레퍼런스와 도구·사이트 주소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데 같은 북마크 폴더에 들어갑니다.
- 이미지 레퍼런스는 많이 모으고 태그로 찾는 게 맞습니다. 핀터레스트, Savee, Are.na 같은 도구가 이 일에 맞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 사이트 주소는 적게 유지하고 항상 같은 자리에 두는 게 맞습니다. 폰트 받는 곳, 아이콘 받는 곳, 팔레트 만드는 곳. 이건 20개면 충분하고, 그 20개를 매번 같은 방식으로 여는 게 중요합니다.
두 번째 항목이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습니다. 눈누 주소를 매번 검색해서 들어가고, 3년 전 저장해 둔 목업 사이트는 도메인이 만료됐고. 이 사이트를 만든 이유도 그 문제였습니다. 분야별 목록을 UI/UX나 그래픽·브랜딩처럼 나눠 두고, 죽은 주소는 지웁니다.
수집과 사용을 분리합니다
평소에 모으는 일과 작업할 때 찾는 일을 같은 활동으로 생각하면 둘 다 안 됩니다.
평소에는 넓게, 얕게. 출퇴근길에 보는 건 분류하지 말고 일단 한 곳에 넣습니다. 이 단계에서 정리하려고 하면 피곤해서 오래 못 갑니다.
작업이 시작되면 좁게, 깊게. 이때는 이미 모아 둔 것에서 고르는 게 아니라 새로 찾습니다. 프로젝트 폴더를 하나 만들고, 이번 작업에만 쓸 레퍼런스를 20~30장 모읍니다. 모아 둔 보드는 그 과정의 출발점 정도로 쓰면 됩니다.
이게 중요한데, 레퍼런스는 프로젝트마다 새로 모으는 게 정상입니다. 평생 쓸 라이브러리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수집을 무겁게 만듭니다. 오래 남는 건 이미지가 아니라 어휘와 판단 기준입니다.
한 달에 한 번 버립니다
모은 걸 정리하는 유일하게 효과적인 방법은 버리는 겁니다. 한 달에 한 번, 10분만 잡고 보드를 열어서 지금 봐도 좋은지 봅니다. 아니면 지웁니다.
지우는 과정에서 패턴이 보입니다. 내가 반복해서 저장하는 종류, 취향의 방향, 남의 것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던 지점. 이 인식이 레퍼런스 수집에서 얻는 가장 큰 소득입니다. 이미지 500장보다 "나는 여백이 큰 비대칭 구성을 좋아한다"는 한 문장이 실제 작업을 바꿉니다.
남의 것에서 내 것으로 가는 지점
레퍼런스를 잘 모아도 그대로 쓰면 그냥 베끼는 겁니다. 한 단계가 더 필요합니다.
좋아 보이는 이유를 문장으로 써 보는 것. "이 포스터는 사진을 위쪽 3분의 2에 두고 아래를 다 비워서 시선이 제목으로 내려온다"처럼요. 이유를 말로 옮길 수 있으면 그 원리를 다른 소재에 적용할 수 있고, 말로 옮길 수 없으면 형태만 가져오게 됩니다.
스타일 이름과 매체 이름을 알아 두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실용적입니다. 이건 디자인 스타일을 말로 옮기는 법에서 더 자세히 다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