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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디자인 툴, 실무에서 갈리는 지점

프롬프트 한 줄로 시안이 서른 장 나오는데 정작 일은 안 줄어드는 이유. AI가 대신해 주는 구간과 여전히 손으로 해야 하는 구간을 나눠 봤습니다.

· 읽는 데 약 3분

시안을 서른 장 받아 놓고 한참 멍하니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분명 30초 만에 나왔고, 분명 다 그럴싸한데, 클라이언트에게 보낼 만한 건 한 장도 없는 상태. AI 툴을 써 본 디자이너들이 공통으로 겪는 구간입니다.

생성 속도가 빨라진 만큼 일이 줄어들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줄어드는 작업과 늘어나는 작업이 따로 있고, 그 경계를 모르는 채로 툴을 붙이면 작업 시간이 오히려 늘어납니다. 어디가 갈리는 지점인지 정리해 봤습니다.

확실히 줄어드는 쪽

막막한 초반. 아무것도 없는 아트보드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제일 아깝습니다. 이 구간은 AI가 잘 메워 줍니다. 방향이 셋쯤 있을 때 각각 어떤 느낌인지 한 장씩 뽑아 놓고 고르는 식으로 쓰면, 회의에서 말로 설명하며 허비하던 시간이 사라집니다. 결과물을 쓰겠다는 게 아니라 대화의 재료로 쓰는 겁니다.

손이 많이 가고 판단은 거의 없는 일. 배경 지우기, 개체 지우기, 저해상도 이미지 키우기, 이미지 늘려 채우기, 같은 배너를 열두 개 비율로 만드는 일. 예전에 한 시간 걸리던 것들이 몇 분으로 줄었습니다. AI 기능 중에서 논란이 가장 적고 효율은 가장 확실한 영역이기도 합니다.

글자로 된 잡무. 더미 텍스트, 마이크로카피 후보, 릴리즈 노트, 회의록 정리. 디자인 업무 시간의 상당 부분이 실은 문서 작업인데, 이쪽은 대화형 모델이 눈에 띄게 잘합니다.

모르는 분야 빨리 훑기. 처음 맡은 업종의 용어와 관행을 파악할 때, 경쟁사 사이트 스무 개를 요약시켜 놓고 읽으면 감이 빨리 잡힙니다. 사실 확인은 따로 해야 하지만 출발점으로는 충분합니다.

잘 안 되는 쪽

같은 걸 또 만들어야 할 때. 이게 가장 큰 벽입니다.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나왔는데 같은 캐릭터를 다른 포즈로 뽑으라고 하면 미묘하게 다른 인물이 나옵니다. 브랜드 일러스트 세트, 시리즈 광고, 캐릭터가 등장하는 패키지처럼 일관성이 곧 품질인 작업에서 AI 단독 생성은 아직 힘듭니다. 레퍼런스 이미지를 물리고 스타일을 고정하는 기능들이 붙고 있지만, 사람이 그려서 쓰는 쪽이 여전히 빠른 경우가 많습니다.

한글 타이포그래피. 이미지 생성 모델의 한글은 눈뜨고 못 볼 수준에서 조금 나아졌을 뿐입니다. 자모가 깨지고 받침이 사라집니다. 글자가 들어가는 결과물은 글자 없이 뽑고 타입은 직접 얹는 편이 안전합니다.

"조금만 수정" 지시. 디자인 일의 절반은 수정입니다. 그런데 프롬프트로는 "이 로고 오른쪽 아래 여백만 4px 줄여 달라"는 말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생성 도구는 매번 새로 만드는 도구라서, 국소 수정에는 구조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이 구간에서 툴을 붙잡고 있으면 시간이 가장 많이 샙니다.

정확한 치수와 규격. 인쇄용 재단선, 실제 제품 실측, 접근성 대비 기준. 숫자로 맞아떨어져야 하는 것들은 AI가 그럴싸하게 틀립니다. 그럴싸하게 틀리는 게 제일 위험합니다.

책임이 걸린 판단. 이 시안을 고르는 게 맞는지, 이 카피가 위험하지 않은지, 이 색이 브랜드 규정을 어기지 않는지. 물어보면 답은 잘 하지만 그 답을 그대로 들고 가면 책임은 본인 몫입니다.

과정에 끼워 넣는 자리

일의 단계별로 나눠 보면 이렇게 정리됩니다.

  1. 리서치와 탐색 — 대화형 모델과 이미지 생성을 적극적으로. 이 구간의 결과물은 버릴 예정이니 부담이 없습니다.
  2. 방향 결정 — 사람이 합니다. AI가 뽑은 것 중에서 고르는 게 아니라, 뭘 만들지 정한 다음에 재료를 찾는 순서가 맞습니다.
  3. 실제 제작 — 평소 쓰는 툴에서. AI는 배경 정리, 업스케일, 변형 생성 같은 보조 작업으로 들어옵니다.
  4. 양산과 변형 — 다시 AI 비중이 올라갑니다. 규격 여러 개, 언어 여러 개, 채널 여러 개를 찍어내는 구간입니다.
  5. 검수 — 사람이. 특히 글자, 손가락 개수, 로고 형태, 규격 숫자는 눈으로 봐야 합니다.

2번과 5번을 AI에 넘기면 사고가 납니다. 반대로 1번과 4번을 계속 손으로 하고 있으면 남들보다 느립니다.

툴을 고를 때 실제로 보는 것

써 보기 전에 확인할 수 있는 것들부터 봅니다.

종류별로 정리해 둔 목록은 AI 디자인 툴 페이지에 있습니다. 대화형, 이미지 생성, 영상, 업스케일, UI·코드 생성으로 나눠 놨습니다.

남는 문제

툴이 늘면서 실력의 정의가 옮겨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머릿속 이미지를 화면에 구현하는 능력이 실력이었는데, 그 구간의 문턱이 낮아졌습니다. 대신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능력과, 나온 것 중에서 고르는 눈의 차이가 전보다 훨씬 크게 벌어집니다. 서른 장 중에 한 장을 고르는 일은 서른 장을 만드는 일보다 어렵고, 이건 프롬프트로 안 됩니다.

고르는 눈은 결국 많이 본 사람이 갖습니다. 그래서 AI를 쓸수록 레퍼런스를 보는 시간이 덜 중요해지는 게 아니라 더 중요해집니다. 프롬프트에 쓸 어휘도 거기서 나옵니다. 이건 디자인 스타일을 말로 옮기는 법에서 따로 다뤘습니다.